[논평] 대심도 빗물터널과 대규모 지하공사, 시민은 무엇을 알고 있는가

2026-05-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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담당자

김동언 물순환정책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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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심도 빗물터널과 대규모 지하공사,

시민은 무엇을 알고 있는가


 ◌ 서울 한복판, 지하 수십 미터 아래에서 지금 이 순간에도 거대한 공사가 진행되고 있다. 서울시는 기후위기 시대의 침수 피해를 막겠다며 강남역, 광화문, 도림천 일대에 대심도 빗물배수터널 공사를 본격화하고 있다. 한 번 완성되면 이 터널은 도심에 쏟아지는 막대한 빗물을 지하 깊은 곳으로 우회·저류하는 초대형 방재 인프라가 된다. 그러나 시민이 실제로 보고 듣는 것은 가림막과 공사 안내판, 그리고 “다소 불편이 있을 수 있다”는 두루뭉술한 설명뿐이다. 서울시는 교통 통제와 주차장 및 공원 폐쇄를 예고하고 있지만, 구체적인 구간과 장소, 통제 기간, 대안과 같은 최소한의 정보조차도 시민들에게 알리지 않고 있다.

 

◌ 대심도 빗물터널은 이름만 낯설 뿐, 도시의 지하를 깊고 넓게 관통하는 대규모 토목공사다. 지하 40~50m 아래에 직경 8~10m 안팎의 터널을 뚫고, 비상시 빗물을 받아내는 구조다. 서울시는 이를 기후위기 대응의 핵심 대책으로 내세우지만, 이런 초대형 지하공사가 시민의 삶과 도시의 기반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에 대해서는 거의 설명하지 않는다. 공사 구간이 어디를 지나가는지, 주변 지하철·공동구·매설관과는 어떻게 교차하는지, 지하수와 지반에는 어떤 영향이 예상되는지, 공사 중 이상 징후가 발생하면 어떤 방식으로 공개하고 대응할 것인지, 시민은 알 수 없다.

 

◌ 이런 불안이 과장이라고 말할 수 없는 이유는, 우리는 이미 GTX 삼성역 철근 누락 사건에 이어 서소문 고가 붕괴 사고를 겪었기 때문이다. 주요 구조부의 철근이 설계와 다르게 시공되었고, 그 사실은 제때 투명하게 공유되지 않았다. 서울시는 구조적 안전에 문제가 없다고 설명했지만, 국가철도공단은 서울시의 사전 보고 주장에 대해 공식적으로 반박했고, 시민은 대형 지하공사에서조차 핵심 위험 정보가 뒤늦게 드러날 수 있다는 사실을 목격했다. 서소문 고가도로 철거 과정에서도 슬래브 절단 이후 상판 침하가 관측되어 공사가 중단됐지만, 그 이후 안전진단·통제 조치와 관련된 정보는 시민에게 충분히 공개되지 않았고, 이상 징후 인지 후에도 하부 공간 통제가 적절했는지를 두고 논란과 수사가 이어지고 있다. 이 사건은 단순한 시공 오류가 아니라, 공사 과정에서 위험과 하자가 언제, 누구에게, 어떻게 공유되고 통제되는지를 둘러싼 시스템의 문제를 드러냈다.

 

◌ 문제는 대심도 빗물터널 역시 같은 구조 속에서 추진되고 있다는 점이다. 시민은 “안전하다”는 결과만 통보받을 뿐, 그 판단의 근거와 과정은 보지 못한다. 위험 정보는 행정과 기술 관료 집단 내부에서만 돌고, 시민은 공사로 인한 불편과 잠재적 위험을 감당해야 하는 위치에만 놓인다. 서울시는 공사의 필요성을 설명할 때는 기후위기와 침수 피해를 강조하지만, 정작 공사로 인해 발생할 수 있는 교통 혼잡, 주차장 폐쇄, 생활권 침해, 지하안전 문제에 대해서는 매우 추상적인 수준에서만 말한다. 이처럼 유리한 정보는 크게 말하고, 불편과 위험은 흐리게 말하는 방식은 공공사업의 책임 있는 소통이라고 보기 어렵다.

 

◌ 더 큰 문제는 서울 도심 지하가 이미 수많은 시설과 위험 요소가 중첩된 공간이라는 사실이다. 지하철, 도로터널, 공동구, 각종 배관과 통신선, 민간 개발 지하공간이 촘촘하게 얽혀 있는 상황에서, 서울 도심 아래 빈 공간과 지반 공동이 다수 확인되었고 일부는 긴급 복구가 필요하다는 사실도 드러난 바 있다. 그럼에도 서울시는 싱크홀 위험 지도와 지반 공동 정보를 시민에게 충분히 공개하지 않아 반복해서 비판을 받아 왔다. 이러한 전례를 볼 때, 대심도 빗물터널이 “보이지 않는 곳에서 알아서 안전하게 관리될 것”이라고 시민에게 믿으라고 요구하는 것은 무책임하다.

 

◌ 대심도 빗물터널에 대한 논의를 이제 와서 “찬성”과 “반대”의 단순한 구도로 접근해선 안 된다. 중요한 것은 어떤 조건과 어떤 감시 체계 속에서 이 사업이 추진되느냐이다. 공사 전에는 지하안전영향평가와 지반·지하수·인접 구조물 영향 검토 내용을 시민 눈높이로 공개해야 한다. 공사 중에는 어느 구간이 굴착 중인지, 계측 데이터가 보여주는 지반 변위와 지하수 변화가 정상 범위인지, 이상 신호가 감지되면 어떤 조치가 취해졌는지 시민들이 알 수 있어야 한다. 또한 발주처·시공사·감리의 자기 점검에만 맡길 것이 아니라, 시민단체와 지역 주민, 외부 전문가가 함께 참여하는 독립적 감시 체계를 제도화해야 한다.

 

◌ 무엇보다 대심도 빗물터널은 침수 문제의 유일한 해법이 아니다. 침수는 단지 배수 용량 부족만의 문제가 아니라, 도시의 높은 불투수율, 사라진 녹지와 습지, 인공화된 하천, 빗물을 머금지 못하는 도시 구조가 누적된 결과다. 따라서 대심도 빗물터널 같은 초대형 토목사업에 예산과 행정 역량을 쏠리게 하는 것은 장기적으로 도시의 회복력을 약화시킬 수 있다. 빗물정원, 침투형 포장, 소규모 저류지, 하천 복원 등 분산형·자연기반 대책을 함께 확대하지 않는다면, 서울시는 또 하나의 거대한 콘크리트 구조물로 문제를 덮으려 한다는 비판을 피하기 어렵다.

 

◌ 우리는 서울시에 요구한다. 대심도 빗물터널 공사의 구체적인 교통 통제 구간, 주차장 폐쇄 장소, 통제 기간, 대체 동선과 대안 정보를 즉각 시민에게 공개하라. 공사 전·중·후의 지하안전 관련 핵심 정보를 정기적으로 공개하고, 시민과 지역사회의 질문에 답하는 공론장을 마련하라. 또한 GTX 철근 누락 사건이 보여준 위험 정보 은폐와 책임 회피의 구조가 반복되지 않도록, 대형 지하공사 전반에 대한 독립적 감시와 시민 통제 장치를 구축하라.

 

◌ 시민이 불안해하는 이유는 기술을 몰라서가 아니다. 보이지 않는 곳에서 벌어지는 거대한 공사를, 책임 있는 설명과 투명한 정보 없이 감내하라고 강요받고 있기 때문이다. 우리 발밑의 안전은 행정과 기술 관료의 전유물이 아니다. 시민의 알 권리와 참여, 감시와 통제 속에서만 비로소 안전은 공공의 것이 될 수 있다.

 

2026. 5. 28.
서울환경연합
이사장 최영식
사무처장 이동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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