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논평] 서울시는 ‘버리는 도시’에서 ‘고쳐 쓰는 도시’로 전환하라

2026-09-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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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담당자

강하늘땅 자원순환팀 활동가

연락처

010-4879-4178/ kanghaneulddang@kfem.or.kr


◌ 이재명 정부가 2025년 취임 후 국정과제로 ‘제품의 수리 용이성 평가 제도화’를 제시하며 수리할 권리를 순환경제의 주요 정책 의제로 올린 지금, 서울시 역시 수리·수선을 주변적인 생활서비스로만 다뤄서는 안 된다. 수리는 물건의 수명을 늘려 조기 폐기를 막고, 폐기물 발생 자체를 줄이는 자원순환 정책이다. 이제 서울시의 자원순환 정책도 버린 뒤 어떻게 처리할 것인가를 넘어, 어떻게 덜 버리고 더 오래 사용할 것인가로 확장되어야 한다. 


◌ 서울환경연합과 자원순환사회경제연구소, 그리고 시민조사단이 서울 25개 자치구의 수리·수선 환경을 평가한 결과, 서울의 수리권 보장 수준은 거주지와 생활권에 따라 큰 차이를 보였다. 최고점인 마포구는 73점, 최저점인 강서구는 46.4점으로 26.6점의 격차가 났으며, 25개 자치구 중 20곳이 50~60점대에 머물렀다. 80점 이상을 받은 자치구는 한 곳도 없었다. 어느 동네에 거주하느냐에 따라 고쳐 쓸 수 있는 환경이 달라지는 것이다. 


◌ 가장 큰 문제는 수리·수선을 자원순환의 관점에서 바라보는 서울시 차원의 종합적인 정책 방향과 추진 체계가 부재하다는 점이다. 현재 자치구의 수리·수선 사업은 자전거, 장애인 이동기기, 우산, 칼갈이, 장난감 등 개별 사업으로 운영되고 있지만, 이들 사업을 폐기물 감축과 자원순환이라는 공통의 목표 아래 연결하고 관리하는 체계는 없다. 그 결과 지역에서 무엇을, 어디서, 얼마나 수리할 수 있는지 종합적으로 파악하고, 수리를 통해 어떤 폐기물 감축 효과를 만들어낼 것인지에 대한 정책적 관리도 이뤄지지 않고 있다. 조사에서도 수리·수선을 ‘자원순환 및 폐기물 감축’의 관점에서 통합 관리하는 자치구는 단 한 곳도 없었다. 서울에는 수리사업은 있지만 수리정책은 없다. 이제 서울시는 단편적인 사업을 반복하는 데 그칠 것이 아니라, 수리를 폐기물 감축과 자원순환을 위한 도시 전략으로 분명하게 세워야 한다.


◌ 수리 가능한 품목의 편중도 나타났다. 자전거 수리는 25개 모든 자치구에서 가능했지만, 장난감 수리는 7개 구, 전자제품과 의류·신발 수리는 각각 4개 구, 가구 수리는 단 1개 구에 불과했다. 시민의 일상에서 자주 사용하고 폐기되는 품목들이 정작 공공 수리 서비스의 사각지대에 놓여 있는 셈이다. 수리정책은 실제 폐기물 발생 특성과 시민의 생활 수요를 반영해야 한다. 배출량이 많고 수리를 통해 사용기간을 늘릴 수 있는 품목을 중심으로 수리 대상과 기반을 확대해야 한다.

◌ 정보 접근성도 시민의 수리권을 가로막고 있다. 조사 대상 25개 자치구 가운데 운영 장소·일정·이용방법 등을 온라인에서 쉽게 확인하고 예약·신청까지 가능한 수준으로 평가된 곳은 양천구 한 곳뿐이었다. 수리 정보는 구청 홈페이지, 주민센터 게시물, 개별 기관의 사회관계망서비스(SNS) 등에 흩어져 있고, 특히 순회형 사업은 날짜와 장소가 자주 바뀌어 시민이 직접 검색하거나 전화로 확인해야 한다. 수리할 수 있는 곳이 있어도 시민이 쉽게 찾고 이용할 수 없다면 수리권은 제대로 보장될 수 없다. 서울시는 흩어진 수리 정보를 통합하고, 누구나 쉽게 확인하고 신청할 수 있는 정보 접근 체계를 마련해야 한다.


◌ 서울시는 이제 ‘수리할 수 있는 도시’를 서울의 자원순환·기후·생활복지 정책의 핵심 과제로 채택해야 한다. 서울환경연합과 자원순환사회경제연구소가 공개한 ‘고치맵-서울’은 흩어진 수리 정보를 한곳에 모으는 중요한 출발점이다. 그러나 민간과 시민사회의 노력에만 의존해서는 안 된다. 서울시가 수리정책의 목표를 세우고, 이를 뒷받침할 제도와 예산, 행정체계를 마련해야 한다. 더 나아가 생활권 수리거점을 확대하고, 수리 가능 품목과 정보 접근성을 개선하며, 수리를 폐기물 감축과 자원순환의 핵심 수단으로 삼아야 한다. 


◌ 수리는 시민의 권리다. 시민에게 필요한 것은 고장 난 물건을 버리는 일이 아니라, 언제든 합리적인 비용으로 고칠 수 있는 선택지다. 그러나 지금 서울의 수리 환경은 정보가 흩어져 있고, 서비스 품목은 제한적이며, 사업은 부서별로 분절돼 있다. ‘고쳐 쓰는 시민’의 노력만으로 해결할 문제가 아니다. 서울시는 수리를 개인의 절약 습관이나 일회성 체험행사로 축소하지 말아야 한다. 물건을 오래 쓰는 것이 당연한 도시, 수리 정보와 공간에 누구나 접근할 수 있는 도시, 수리가 폐기물 감축의 실질적 수단으로 작동하는 도시를 만드는 것은 지방정부의 책무다. 서울시는 지금부터라도 수리권을 시민의 생활권으로 보장하고, 서울 전역에 촘촘한 수리 인프라와 통합 행정체계를 구축하라. 서울이 진정한 자원순환 도시를 지향한다면 버리기 전에 고쳐 쓰는 도시로 전환해야 한다.


2026. 9. 28.

서울환경연합

이사장 최영식

사무처장 이동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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