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나무를 위한 '사물의 의회' 첫 시도··· 부암동 은행나무 사건 다시 풀다
서울환경연합과 예술인팀 ‘나무의 의회’, 시민참여 워크숍 <관계를 소환하라!> 3회에 걸친 여정 마무리
은행나무·미술관 담장·CCTV··· 라투르의 ‘사물의 의회’로 인간과 비인간의 행위소를 소환하고 번역하다
서울환경연합과 예술인팀 ‘나무의 의회’가 공동 기획한 시민참여 워크숍 《관계를 소환하라! : 도시 나무를 둘러싼 행위자들》(이하 워크숍)이 지난 9월 21일, 3회에 걸친 일정을 마무리했다.
이번 워크숍은 도시의 나무를 고립된 개체가 아닌, 수많은 인간과 비인간이 얽혀 살아가는 관계적 존재로 바라보는 데서 출발했다. 이를 위해 지난 4월 서울 종로구 부암동 환기미술관 인근에서 발생한 은행나무 제초제 주입 사건을 중심 사례로 삼았다. 프랑스 철학자이자 과학기술학자인 브뤼노 라투르(Bruno Latour)의 ‘사물의 의회(Parliament of Things)’에서 착안해, 시민들이 사건에 얽힌 다양한 행위소를 조사하고 그 관계를 번역하며 새로운 연결의 가능성을 탐색하도록 기획되었다.
이번 워크숍에서 소재로 한 사건은 지난 4월 22일, 환기미술관과 계약한 조경업체가 담장 옆 사유지 도로에 있는 100년 이상 된 은행나무에 제초제를 주입한 건이다. 이 사건은 5월 중순인데 나뭇잎이 황사하고 떨어지는 것을 이상하게 여긴 한 부암동 주민의 제보로 공론화됐고, 이후 인근 거주민이 제공한 CCTV로 사실이 확인되자 환기미술관 직원이 "약품을 주입했다"고 직접 인정했다. 100년 넘게 살아온 나무가 한 순간에 죽음 직전에 이른 이 사건은 사유지 내 오래된 나무를 보호할 제도가 마땅치 않다는 현실에 경종을 울렸다. 예술인팀은 “이 사건을 통해 알 수 있는 사실은 도시의 나무 한 그루가 많은 존재와 제도에 기대어 있다는 것과 그 관계가 평소에는 잘 보이지 않는다는 것이다”라며, “법적 책임과 진실을 넘어, 나무와 토양, 미술관과 행정기관, 주민과 제도가 서로 어떻게 얽혀있는지를 시민의 언어로 다시 묻고자 했다”고 이번 워크숍을 마련한 이유를 밝혔다.

워크숍은 총 세 차례에 걸쳐 진행됐다. 9월 12일 열린 1회차 ‘나무를 둘러싼 연결망 현장조사’에서는 참여자들이 사건 현장을 직접 방문해 은행나무와 미술관을 둘러싼 관계망과 행위소(actant)를 탐색했다. 행위소란 관계망 속에서 다른 존재에 영향을 미치거나 상황에 변화를 일으키는 인간과 비인간의 존재 및 조건을 뜻한다.
참여자들은 부암동 은행나무 ‘수화(樹話)' 살리미 구성원인 현경 유니온신학대학원 명예교수와 최진우 서울환경연합 생태도시전문위원의 안내를 받으며 은행나무와 주변 환경을 관찰하고, 현장에서 발견한 관계를 기록했다. 운영진은 이 조사 결과에 추가 자료조사를 더해 뿌리·토양·제초제·CCTV·조경업자·종로구청·지역주민 등을 포함한 20개의 핵심 행위소를 선정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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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관계를 소환하라!> 1차 워크숍에서 현경 유니온신학대학원 명예교수가 사건 경과를 소개하고 있다. | <관계를 소환하라!> 1차 워크숍에서 참여자들이 나무 주위 환경을 관찰하며 행위소를 찾고 있다. |
9월 14일 종로구 엔피오피아홀에서 열린 2회차 ‘행위자 소환과 번역하기’에서는 참여자들이 앞서 선정된 20개의 핵심 행위소 중 하나를 무작위로 배정받았다. 낯선 행위소를 맡게 된 참여자들은 당혹감 속에서도 자신이 맡은 행위소의 입장에서 은행나무와의 관계를 추론하며 첫 번째 ‘번역’을 시도했다.
‘수액과 도관’을 맡은 한 참여자는 자신의 행위소가 “제초제를 나뭇가지에 전달해 은행나무를 죽인 통로이자, 살리기 위해 발버둥 치며 물을 실어 나른 기관이었을 것”이라고 추측했다. 한편 ‘지역주민’을 맡은 참여자는 “인간 사회에서 가장 큰 범위를 차지하지만 실질적인 결정권이 없기 때문에, 은행나무와 가깝지만 가깝지 못한 관계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이날의 첫 번째 번역은 충분한 조사에 앞서 이루어진 잠정적인 해석이었다. 참여자들은 이후 자신이 맡은 행위소의 특성과 역할, 은행나무와의 관계를 뒷받침할 근거를 개별적으로 조사하는 과제를 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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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관계를 소환하라!> 2차 워크숍 모습 | <관계를 소환하라!> 2차 워크숍 모습 |
이번 워크숍은 은행나무를 둘러싼 기존 관계를 파악하는 데 그치지 않고, 나무가 당면한 문제에 대응하기 위해 어떤 새로운 연결과 동맹이 필요한지 모색하는 데 목적을 뒀다. 일주일 뒤인 9월 21일, 같은 장소에서 열린 마지막 워크숍에서는 각자 맡은 행위소를 조사해 온 참여자들이 바닥에 펼쳐진 ‘나침반’ 위에 섰다. 참여자들은 조사 결과를 토대로 은행나무와의 관계가 얼마나 직접적인지에 따라 중심과의 거리를 정하고, 생명·관계·증거·권한이라는 네 방향 중 자신이 서야 할 위치를 선택했다.
이어 다른 행위소들의 발언을 들으며 자신의 판단을 재검토하고, 필요에 따라 위치와 방향을 조정했다. 마지막으로 문제 해결에 필요한 행위소에게 동맹을 요청하고 서로를 리본으로 연결하며 새로운 관계망을 형성했다. 은행나무의 서식 환경과 연결된 ‘새’는 ‘지역주민’에게, ‘지역주민’은 제초제에 관한 정보를 가진 것으로 지목된 ‘조경업자’에게, ‘조경업자’는 나무의 치료에 필요한 전문성을 지닌 ‘나무 전문가’에게 동맹을 제안했다. 서로 다른 역할과 이해관계를 지닌 행위소들이 필요한 상대를 호명하면서, 나침반 위에는 기존의 관계를 넘어서는 새로운 연결이 리본으로 펼쳐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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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리본과 리본으로 연결된 참여자들의 모습 | 가장 많은 요청을 받은 ‘나무 전문가’ 행위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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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나무 전문가 행위소를 맡은 참여자가 발언하고 있다 |
이날 가장 많은 동맹 요청을 받은 행위소는 ‘나무 전문가’였다. 해당 행위소를 맡은 참여자는 그 이유에 대해 “사회적 책임의 상징이기 때문이라고 추측한다”고 말했다. 이어 나무의 치료와 관리에 필요한 전문성이 사회적으로 제도화돼 있다는 점을 언급하며, 나무 전문가가 나무를 살리기 위한 판단의 근거를 마련하고 그에 따른 책임을 수행할 수 있는 존재이기에 여러 행위소로부터 요청을 받은 것 같다고 설명했다.
‘사물의 의회’를 현실의 실험으로 옮기려는 시도는 이번이 처음은 아니다. 국내에서는 2025년 11월 시민 100여 명이 참여해 기후생태헌법 제정을 논의한 《사물의 의회 2025》를 비롯해, 건국대학교의 생태리터러시 교육 프로그램 ‘KU 사물의 의회’, 같은 해 12월부터 두 달간 금천문화재단에서 진행된 렉처 퍼포먼스 《사물의 극장: 인간과 자연의 새로운 계약》 등이 시도됐다. 이들은 각각 시민 숙의와 정치적 대표, 생태교육, 참여예술의 영역에서 인간과 비인간이 함께하는 공론장의 가능성을 탐색했다.
기존 국내 ‘사물의 의회’가 비인간의 정치적 대표와 공론장의 가능성을 실험해 왔다면, 이번 워크숍은 그러한 의회가 실제로 성립하기 위해 무엇이 선행되어야 하는가라는 질문에서 출발했다. 부암동 은행나무라는 구체적인 사건을 ‘조사’하고, 인간과 비인간의 관계를 참여자들의 몸과 움직임으로 ‘가시화’했다는 점에서 차이가 있는 것이다. 워크숍을 총괄한 시각예술가 정윤선 작가는 “비인간을 소환하는 것만으로 그들의 목소리가 대변되는 것은 아니며, 인간이 비인간을 대신해 말할 때 번역의 근거와 정당성을 어떻게 확보할 것인가가 핵심이다”라고 말했다. 이어 “충분한 조사와 학습, 서로 다른 지식과 증거를 검토하며 자신의 판단을 수정하는 과정이 반드시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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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관계를 소환하라!> 1차 워크숍을 진행하고 있는 정윤선 작가 |
이번 워크숍을 참관한 ‘사물의 의회 2025’ 조직위원장 김환석 국민대학교 사회학과 명예교수는 “참여자들의 몸과 움직임을 활용한 퍼포먼스 형식의 실험은 국내에서 처음이어서 매우 참신했다”고 평가했다. 이어 “인간 못지않게 중요한 비인간의 관계를 가시화하고 이를 통해 사건을 판단한다는 ‘사물의 의회’의 취지를 살리면서, 우리 현실에 맞는 독자적인 형식을 창안하고 실험해 나가길 바란다”고 기대를 밝혔다.
조해민 서울환경연합 활동가는 “이번 은행나무 독살 사건은 관계의 복잡성을 간과한 채 인간 중심적이고 자기중심적으로 판단할 때 어떤 결과가 초래되는지를 여실히 보여준다”며 “사건의 근본적인 해결을 위해서는 이번 워크숍의 제목처럼 더 많은 관계를 소환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어 “죽임의 관계망이 아닌 살림과 동맹의 관계망을 더욱 견고하게 만들어야 한다”며 “이번 워크숍이 그 출발점이 되길 바란다”고 덧붙였다.
《관계를 소환하라! : 도시 나무를 둘러싼 행위자들》은 2027년까지 이어지는 예술 프로젝트 《나무의 의회》의 일환으로 진행됐다. 올해 시민참여 워크숍에서 탐색한 도시 나무를 둘러싼 다양한 행위자와 관계는 향후 관객 참여형 다원예술 형식으로 발전시켜 2027년 선보일 예정이다. 예술인 팀은 올해는 시민 참여형 퍼포먼스를 통해 관계를 가시화하고 잠정적 동맹을 형성하는 데까지 나아갔다면 향후 더욱 정교한 번역과 숙의 절차를 마련하고 지속적 협의와 제도적 실천으로 나아갈 수 있는 조건을 탐색하겠다는 계획을 밝혔다.
이번 워크숍은 도자·시각·미디어·연극·기후활동 등 서로 다른 분야에서 활동하는 예술인 6인(김영준, 김현영, 남소연, 이경미, 정윤선, 정한나)이 공동 기획·진행했으며, 한국예술인복지재단이 주최하는 ‘2026 예술로 기획사업’의 일환으로 마련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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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9. <관계를 소환하라!> 3회차 워크숍 참여자 단체사진 |
2026. 09. 30.
서울환경연합
이사장 최영식
사무처장 이동이
보도자료 사진 다운로드
나무를 위한 '사물의 의회' 첫 시도··· 부암동 은행나무 사건 다시 풀다
서울환경연합과 예술인팀 ‘나무의 의회’, 시민참여 워크숍 <관계를 소환하라!> 3회에 걸친 여정 마무리
은행나무·미술관 담장·CCTV··· 라투르의 ‘사물의 의회’로 인간과 비인간의 행위소를 소환하고 번역하다
김영준(리더예술인) / a_major@daum.net / 010-9027-4965
조해민(생태도시팀 활동가) / haem@kfem.or.kr / 010-2824-4604
서울환경연합과 예술인팀 ‘나무의 의회’가 공동 기획한 시민참여 워크숍 《관계를 소환하라! : 도시 나무를 둘러싼 행위자들》(이하 워크숍)이 지난 9월 21일, 3회에 걸친 일정을 마무리했다.
이번 워크숍은 도시의 나무를 고립된 개체가 아닌, 수많은 인간과 비인간이 얽혀 살아가는 관계적 존재로 바라보는 데서 출발했다. 이를 위해 지난 4월 서울 종로구 부암동 환기미술관 인근에서 발생한 은행나무 제초제 주입 사건을 중심 사례로 삼았다. 프랑스 철학자이자 과학기술학자인 브뤼노 라투르(Bruno Latour)의 ‘사물의 의회(Parliament of Things)’에서 착안해, 시민들이 사건에 얽힌 다양한 행위소를 조사하고 그 관계를 번역하며 새로운 연결의 가능성을 탐색하도록 기획되었다.
이번 워크숍에서 소재로 한 사건은 지난 4월 22일, 환기미술관과 계약한 조경업체가 담장 옆 사유지 도로에 있는 100년 이상 된 은행나무에 제초제를 주입한 건이다. 이 사건은 5월 중순인데 나뭇잎이 황사하고 떨어지는 것을 이상하게 여긴 한 부암동 주민의 제보로 공론화됐고, 이후 인근 거주민이 제공한 CCTV로 사실이 확인되자 환기미술관 직원이 "약품을 주입했다"고 직접 인정했다. 100년 넘게 살아온 나무가 한 순간에 죽음 직전에 이른 이 사건은 사유지 내 오래된 나무를 보호할 제도가 마땅치 않다는 현실에 경종을 울렸다. 예술인팀은 “이 사건을 통해 알 수 있는 사실은 도시의 나무 한 그루가 많은 존재와 제도에 기대어 있다는 것과 그 관계가 평소에는 잘 보이지 않는다는 것이다”라며, “법적 책임과 진실을 넘어, 나무와 토양, 미술관과 행정기관, 주민과 제도가 서로 어떻게 얽혀있는지를 시민의 언어로 다시 묻고자 했다”고 이번 워크숍을 마련한 이유를 밝혔다.
워크숍은 총 세 차례에 걸쳐 진행됐다. 9월 12일 열린 1회차 ‘나무를 둘러싼 연결망 현장조사’에서는 참여자들이 사건 현장을 직접 방문해 은행나무와 미술관을 둘러싼 관계망과 행위소(actant)를 탐색했다. 행위소란 관계망 속에서 다른 존재에 영향을 미치거나 상황에 변화를 일으키는 인간과 비인간의 존재 및 조건을 뜻한다.
참여자들은 부암동 은행나무 ‘수화(樹話)' 살리미 구성원인 현경 유니온신학대학원 명예교수와 최진우 서울환경연합 생태도시전문위원의 안내를 받으며 은행나무와 주변 환경을 관찰하고, 현장에서 발견한 관계를 기록했다. 운영진은 이 조사 결과에 추가 자료조사를 더해 뿌리·토양·제초제·CCTV·조경업자·종로구청·지역주민 등을 포함한 20개의 핵심 행위소를 선정했다.
9월 14일 종로구 엔피오피아홀에서 열린 2회차 ‘행위자 소환과 번역하기’에서는 참여자들이 앞서 선정된 20개의 핵심 행위소 중 하나를 무작위로 배정받았다. 낯선 행위소를 맡게 된 참여자들은 당혹감 속에서도 자신이 맡은 행위소의 입장에서 은행나무와의 관계를 추론하며 첫 번째 ‘번역’을 시도했다.
‘수액과 도관’을 맡은 한 참여자는 자신의 행위소가 “제초제를 나뭇가지에 전달해 은행나무를 죽인 통로이자, 살리기 위해 발버둥 치며 물을 실어 나른 기관이었을 것”이라고 추측했다. 한편 ‘지역주민’을 맡은 참여자는 “인간 사회에서 가장 큰 범위를 차지하지만 실질적인 결정권이 없기 때문에, 은행나무와 가깝지만 가깝지 못한 관계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이날의 첫 번째 번역은 충분한 조사에 앞서 이루어진 잠정적인 해석이었다. 참여자들은 이후 자신이 맡은 행위소의 특성과 역할, 은행나무와의 관계를 뒷받침할 근거를 개별적으로 조사하는 과제를 받았다.
이번 워크숍은 은행나무를 둘러싼 기존 관계를 파악하는 데 그치지 않고, 나무가 당면한 문제에 대응하기 위해 어떤 새로운 연결과 동맹이 필요한지 모색하는 데 목적을 뒀다. 일주일 뒤인 9월 21일, 같은 장소에서 열린 마지막 워크숍에서는 각자 맡은 행위소를 조사해 온 참여자들이 바닥에 펼쳐진 ‘나침반’ 위에 섰다. 참여자들은 조사 결과를 토대로 은행나무와의 관계가 얼마나 직접적인지에 따라 중심과의 거리를 정하고, 생명·관계·증거·권한이라는 네 방향 중 자신이 서야 할 위치를 선택했다.
이어 다른 행위소들의 발언을 들으며 자신의 판단을 재검토하고, 필요에 따라 위치와 방향을 조정했다. 마지막으로 문제 해결에 필요한 행위소에게 동맹을 요청하고 서로를 리본으로 연결하며 새로운 관계망을 형성했다. 은행나무의 서식 환경과 연결된 ‘새’는 ‘지역주민’에게, ‘지역주민’은 제초제에 관한 정보를 가진 것으로 지목된 ‘조경업자’에게, ‘조경업자’는 나무의 치료에 필요한 전문성을 지닌 ‘나무 전문가’에게 동맹을 제안했다. 서로 다른 역할과 이해관계를 지닌 행위소들이 필요한 상대를 호명하면서, 나침반 위에는 기존의 관계를 넘어서는 새로운 연결이 리본으로 펼쳐졌다.
이날 가장 많은 동맹 요청을 받은 행위소는 ‘나무 전문가’였다. 해당 행위소를 맡은 참여자는 그 이유에 대해 “사회적 책임의 상징이기 때문이라고 추측한다”고 말했다. 이어 나무의 치료와 관리에 필요한 전문성이 사회적으로 제도화돼 있다는 점을 언급하며, 나무 전문가가 나무를 살리기 위한 판단의 근거를 마련하고 그에 따른 책임을 수행할 수 있는 존재이기에 여러 행위소로부터 요청을 받은 것 같다고 설명했다.
‘사물의 의회’를 현실의 실험으로 옮기려는 시도는 이번이 처음은 아니다. 국내에서는 2025년 11월 시민 100여 명이 참여해 기후생태헌법 제정을 논의한 《사물의 의회 2025》를 비롯해, 건국대학교의 생태리터러시 교육 프로그램 ‘KU 사물의 의회’, 같은 해 12월부터 두 달간 금천문화재단에서 진행된 렉처 퍼포먼스 《사물의 극장: 인간과 자연의 새로운 계약》 등이 시도됐다. 이들은 각각 시민 숙의와 정치적 대표, 생태교육, 참여예술의 영역에서 인간과 비인간이 함께하는 공론장의 가능성을 탐색했다.
기존 국내 ‘사물의 의회’가 비인간의 정치적 대표와 공론장의 가능성을 실험해 왔다면, 이번 워크숍은 그러한 의회가 실제로 성립하기 위해 무엇이 선행되어야 하는가라는 질문에서 출발했다. 부암동 은행나무라는 구체적인 사건을 ‘조사’하고, 인간과 비인간의 관계를 참여자들의 몸과 움직임으로 ‘가시화’했다는 점에서 차이가 있는 것이다. 워크숍을 총괄한 시각예술가 정윤선 작가는 “비인간을 소환하는 것만으로 그들의 목소리가 대변되는 것은 아니며, 인간이 비인간을 대신해 말할 때 번역의 근거와 정당성을 어떻게 확보할 것인가가 핵심이다”라고 말했다. 이어 “충분한 조사와 학습, 서로 다른 지식과 증거를 검토하며 자신의 판단을 수정하는 과정이 반드시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이번 워크숍을 참관한 ‘사물의 의회 2025’ 조직위원장 김환석 국민대학교 사회학과 명예교수는 “참여자들의 몸과 움직임을 활용한 퍼포먼스 형식의 실험은 국내에서 처음이어서 매우 참신했다”고 평가했다. 이어 “인간 못지않게 중요한 비인간의 관계를 가시화하고 이를 통해 사건을 판단한다는 ‘사물의 의회’의 취지를 살리면서, 우리 현실에 맞는 독자적인 형식을 창안하고 실험해 나가길 바란다”고 기대를 밝혔다.
조해민 서울환경연합 활동가는 “이번 은행나무 독살 사건은 관계의 복잡성을 간과한 채 인간 중심적이고 자기중심적으로 판단할 때 어떤 결과가 초래되는지를 여실히 보여준다”며 “사건의 근본적인 해결을 위해서는 이번 워크숍의 제목처럼 더 많은 관계를 소환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어 “죽임의 관계망이 아닌 살림과 동맹의 관계망을 더욱 견고하게 만들어야 한다”며 “이번 워크숍이 그 출발점이 되길 바란다”고 덧붙였다.
《관계를 소환하라! : 도시 나무를 둘러싼 행위자들》은 2027년까지 이어지는 예술 프로젝트 《나무의 의회》의 일환으로 진행됐다. 올해 시민참여 워크숍에서 탐색한 도시 나무를 둘러싼 다양한 행위자와 관계는 향후 관객 참여형 다원예술 형식으로 발전시켜 2027년 선보일 예정이다. 예술인 팀은 올해는 시민 참여형 퍼포먼스를 통해 관계를 가시화하고 잠정적 동맹을 형성하는 데까지 나아갔다면 향후 더욱 정교한 번역과 숙의 절차를 마련하고 지속적 협의와 제도적 실천으로 나아갈 수 있는 조건을 탐색하겠다는 계획을 밝혔다.
이번 워크숍은 도자·시각·미디어·연극·기후활동 등 서로 다른 분야에서 활동하는 예술인 6인(김영준, 김현영, 남소연, 이경미, 정윤선, 정한나)이 공동 기획·진행했으며, 한국예술인복지재단이 주최하는 ‘2026 예술로 기획사업’의 일환으로 마련됐다.
2026. 09. 30.
서울환경연합
이사장 최영식
사무처장 이동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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