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025년 3월 22일, 경북 의성에서 시작된 불은 안동, 청송, 영양, 영덕까지 번지며 116,000헥타르가 넘는 산림을 삼켰습니다. 27명이 목숨을 잃었고, 4천여 채의 집이 전소되었으며, 수많은 이재민이 하루아침에 삶의 터전을 잃었습니다. 피해 추정액만 1조 1천억 원. 대한민국 역사상 최악의 산불이었습니다.
재난 직후 정부가 내놓은 설명은 '강풍'이었습니다. 불가항력이었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는 그 말 앞에서 멈출 수 없었습니다. 헬기 수십 대와 수천 명의 인력이 투입되고도 진화율이 한 자릿수를 맴돈 현실을 어떻게 바람 탓으로만 돌릴 수 있겠습니까. 왜 불이 그토록 빠르게 번졌는지, 왜 진화 가능한 시간에 진화가 이루어지지 못했는지, 왜 산림 정책이 재난을 막기는커녕 키운 것은 아닌지. 이 물음에 답하는 것은 정부의 몫이었습니다. 그런데 정부는 답하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시민사회가 직접 나섰습니다. 정부가 하지 않는 조사를, 정부에 묻고 싶은 질문을, 시민의 힘으로 수행하기로 했습니다. 불교환경연대, 안동환경운동연합, 서울환경연합, 생명다양성재단이 함께 손을 잡았습니다. '산불피해 회복과 산림관리 전환을 위한 시민모임'이 곁에 섰고, 그린피스 서울사무소가 영상 기록으로 함께했습니다. 부산대학교 홍석환 교수팀과 산불정책연구소 황정석 소장팀을 비롯한 6개 대학·연구소가 과학적 연구조사를 책임졌습니다. 후원을 해준 파타고니아와 환경운동연합 대구경북 광역협의회, 그리고 온라인 모금에 뜻을 모아준 5,113명의 시민들 후원이 이 프로젝트를 지탱했습니다.
민간이 대형 재난의 원인을 독자적으로 조사한다는 것은 한국 사회에서 흔한 일이 아닙니다. 예산도, 권한도, 정보 접근도 제한적입니다. 산림청은 핵심 자료의 공개를 거부했고, 우리는 자체적으로 위성영상을 분석하고 현장 발품에 의지해야 했습니다. 그럼에도 10개월을 버틸 수 있었던 것은, 이 조사가 반드시 필요하다는 확신 때문이었습니다. 재난의 원인을 밝히는 일은 국가만의 전유물이 아닙니다. 국가가 스스로를 조사하지 않을 때, 시민이 나서서 진실에 다가가는 것, 그것이 바로 민간 조사의 존재 이유입니다.
2025년 10월 1차 보고회, 2026년 1월 중간발표, 2월 최종발표에 이르기까지, 우리는 세 차례의 공개 발표를 통해 연구 과정을 사회와 나누었습니다. 1,050개 현장 조사구에서 수집한 데이터와 산림청 상황도 35건의 전수 분석 결과는, 이 산불이 불가항력적 자연재해가 아니라 대응 실패와 정책 실패가 겹쳐 빚어진 인재적 성격의 재난이었음을 가리키고 있습니다. 그 구체적인 분석과 근거는 이 보고서의 본문에 상세히 담겨 있습니다.
이 보고서를 발간하며 우리가 전하고자 하는 메시지는 분명합니다. 대형산불은 기후변화 탓만이 아닙니다. 불을 키우는 숲을 만든 것도, 불을 끄는 체계를 제대로 갖추지 못한 것도, 결국 사람의 결정이었습니다. 일본과 중국이 기후변화가 진행되는 와중에도 대형산불을 줄여온 사례가 보여주듯, 정책의 방향이 바뀌면 결과는 달라집니다. 그 방향 전환을 가로막는 것은 자연이 아니라 관성입니다.
우리는 촉구합니다. 국회는 이 재난에 대한 국정조사에 나서야 합니다. 산림청은 조사 결과를 겸허히 받아들이고 산불 대응 체계와 산림 관리 정책의 전면적 쇄신에 착수해야 합니다. 나아가 산림 정책 전반을 시민과 전문가가 함께 검토할 수 있는 독립적 공론화 기구의 설치를 제안합니다. 대한민국 정부수립 이후 오직 한 방향으로만 달려온 산림 행정이 자력으로 방향을 바꾸기를 기대하는 것은 비현실적이기 때문입니다.
이 조사는 끝이 아니라 시작입니다. 보고서 발간 이후에도 우리는 정보공개 청구와 추가 분석을 이어갈 것이며, 정책 전환이 실제로 이루어지는지 감시하고 기록할 것입니다. 시민 조사의 힘은 한 번의 보고서에서 끝나지 않습니다. 물음을 멈추지 않는 것, 기록을 놓지 않는 것, 변화가 일어날 때까지 자리를 지키는 것. 그것이 우리가 앞으로도 해나갈 일입니다.
끝으로, 산을 오르내리며 조사구 하나하나를 기록한 연구자들, 불탄 숲 앞에서 카메라를 들었던 활동가들, 멀리서 마음과 돈을 보태준 시민들께 깊이 감사드립니다. 그리고 무엇보다, 이 산불로 세상을 떠난 27명의 이웃과 삶터를 잃은 이재민 여러분께, 이 보고서가 부족하나마 진실을 향한 한 걸음이 되기를 바랍니다.
2026년 3월 23일
불교환경연대 · 안동환경운동연합 · 서울환경연합 · 생명다양성재단
2025 경북산불 피해확산 원인조사 연구보고서 다운로드

2025년 3월 22일, 경북 의성에서 시작된 불은 안동, 청송, 영양, 영덕까지 번지며 116,000헥타르가 넘는 산림을 삼켰습니다. 27명이 목숨을 잃었고, 4천여 채의 집이 전소되었으며, 수많은 이재민이 하루아침에 삶의 터전을 잃었습니다. 피해 추정액만 1조 1천억 원. 대한민국 역사상 최악의 산불이었습니다.
재난 직후 정부가 내놓은 설명은 '강풍'이었습니다. 불가항력이었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는 그 말 앞에서 멈출 수 없었습니다. 헬기 수십 대와 수천 명의 인력이 투입되고도 진화율이 한 자릿수를 맴돈 현실을 어떻게 바람 탓으로만 돌릴 수 있겠습니까. 왜 불이 그토록 빠르게 번졌는지, 왜 진화 가능한 시간에 진화가 이루어지지 못했는지, 왜 산림 정책이 재난을 막기는커녕 키운 것은 아닌지. 이 물음에 답하는 것은 정부의 몫이었습니다. 그런데 정부는 답하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시민사회가 직접 나섰습니다. 정부가 하지 않는 조사를, 정부에 묻고 싶은 질문을, 시민의 힘으로 수행하기로 했습니다. 불교환경연대, 안동환경운동연합, 서울환경연합, 생명다양성재단이 함께 손을 잡았습니다. '산불피해 회복과 산림관리 전환을 위한 시민모임'이 곁에 섰고, 그린피스 서울사무소가 영상 기록으로 함께했습니다. 부산대학교 홍석환 교수팀과 산불정책연구소 황정석 소장팀을 비롯한 6개 대학·연구소가 과학적 연구조사를 책임졌습니다. 후원을 해준 파타고니아와 환경운동연합 대구경북 광역협의회, 그리고 온라인 모금에 뜻을 모아준 5,113명의 시민들 후원이 이 프로젝트를 지탱했습니다.
민간이 대형 재난의 원인을 독자적으로 조사한다는 것은 한국 사회에서 흔한 일이 아닙니다. 예산도, 권한도, 정보 접근도 제한적입니다. 산림청은 핵심 자료의 공개를 거부했고, 우리는 자체적으로 위성영상을 분석하고 현장 발품에 의지해야 했습니다. 그럼에도 10개월을 버틸 수 있었던 것은, 이 조사가 반드시 필요하다는 확신 때문이었습니다. 재난의 원인을 밝히는 일은 국가만의 전유물이 아닙니다. 국가가 스스로를 조사하지 않을 때, 시민이 나서서 진실에 다가가는 것, 그것이 바로 민간 조사의 존재 이유입니다.
2025년 10월 1차 보고회, 2026년 1월 중간발표, 2월 최종발표에 이르기까지, 우리는 세 차례의 공개 발표를 통해 연구 과정을 사회와 나누었습니다. 1,050개 현장 조사구에서 수집한 데이터와 산림청 상황도 35건의 전수 분석 결과는, 이 산불이 불가항력적 자연재해가 아니라 대응 실패와 정책 실패가 겹쳐 빚어진 인재적 성격의 재난이었음을 가리키고 있습니다. 그 구체적인 분석과 근거는 이 보고서의 본문에 상세히 담겨 있습니다.
이 보고서를 발간하며 우리가 전하고자 하는 메시지는 분명합니다. 대형산불은 기후변화 탓만이 아닙니다. 불을 키우는 숲을 만든 것도, 불을 끄는 체계를 제대로 갖추지 못한 것도, 결국 사람의 결정이었습니다. 일본과 중국이 기후변화가 진행되는 와중에도 대형산불을 줄여온 사례가 보여주듯, 정책의 방향이 바뀌면 결과는 달라집니다. 그 방향 전환을 가로막는 것은 자연이 아니라 관성입니다.
우리는 촉구합니다. 국회는 이 재난에 대한 국정조사에 나서야 합니다. 산림청은 조사 결과를 겸허히 받아들이고 산불 대응 체계와 산림 관리 정책의 전면적 쇄신에 착수해야 합니다. 나아가 산림 정책 전반을 시민과 전문가가 함께 검토할 수 있는 독립적 공론화 기구의 설치를 제안합니다. 대한민국 정부수립 이후 오직 한 방향으로만 달려온 산림 행정이 자력으로 방향을 바꾸기를 기대하는 것은 비현실적이기 때문입니다.
이 조사는 끝이 아니라 시작입니다. 보고서 발간 이후에도 우리는 정보공개 청구와 추가 분석을 이어갈 것이며, 정책 전환이 실제로 이루어지는지 감시하고 기록할 것입니다. 시민 조사의 힘은 한 번의 보고서에서 끝나지 않습니다. 물음을 멈추지 않는 것, 기록을 놓지 않는 것, 변화가 일어날 때까지 자리를 지키는 것. 그것이 우리가 앞으로도 해나갈 일입니다.
끝으로, 산을 오르내리며 조사구 하나하나를 기록한 연구자들, 불탄 숲 앞에서 카메라를 들었던 활동가들, 멀리서 마음과 돈을 보태준 시민들께 깊이 감사드립니다. 그리고 무엇보다, 이 산불로 세상을 떠난 27명의 이웃과 삶터를 잃은 이재민 여러분께, 이 보고서가 부족하나마 진실을 향한 한 걸음이 되기를 바랍니다.
2026년 3월 23일
불교환경연대 · 안동환경운동연합 · 서울환경연합 · 생명다양성재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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